빛 3

 

무더웠던 여름, 언제 그러한 듯 가을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다른 계절, 시기의 빛과는 다르게 그에 맞는 생각,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빛과 같은 모습도 그런 점이 있음을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류는 빛의 색 나뉨을 파장이라는 개념을 발견하여 접목하였고 그 파장 대에 따라, 특정 상태에 도움이 되기도,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빛을 세상화 시켜, 표면을 색칠하게 하는 인간의 접근의 방법에 의해 또한 여러 삶의 영역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건축, 옷, 물품 등의 재질에 색을 입혀 미적 감각에 일조하였고, 음식의 색상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인체의 색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나누어 세상화시킨 모습은, 필연적 과정에의 창조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근본에의 갈망을 가진 피조물과의 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 빛과 같은 존재로 살라고 하신 모습에는, 세상이 선을 향하는 삶이 되게 하라고 하신 말씀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적으로의 접근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피의 붉음, 생명체 고유의 존재하는 기관의 색상, 인류의 때와 공간에 주로 사용하는 색상 등에도 나름의 연유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영역은 이 분야에 좀 더 많은 할애를 하고 있는 분의 견해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리즘을 통과하는 한줄기 빛이라는 접근을 전제하여, 빛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나뉨이 어떻게 순차적으로 나뉘게 될까요. 매개가 되는 공간의 물질의 조건, 매개의 표면의 기울기와 매질의 통과 길이, 시간, 입자의 밀도 등의 여부에 의하여 그런 결과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파장의 나뉨과 숫자를 부여하는 등을 통해 그런 순차적 배열이 생겨나는 것' 이라고 개념을 정의하여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차후에 좀 더 다루어 보겠습니다.

프리즘이라는 일정한 기울기를 통과하는 빛이 그 고유한 파장과 입자 활동으로 인해 매질의 저항을 통과하면서 빛의 나아가는 속도가 줄어듦이 결국에는 빛의 직선 운동서 일정한 꺽임, 기울기로 방향이 변한다는 것인데, 왜 특정한 방향으로 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 방향이나 바뀔 것인가요.
여기 한 쌍의 두 물질이 존재한다고 합시다. 둘이 똑같이 손잡고 나아가다가 한쪽이 먼저 무언가에 걸리거나 통과하는 경우, 저항을 먼저 경험하게 되어, 나가는 모습이 늦어지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움직이거나 할 것입니다. 손잡고 가던 다른 사람은 그에 맞추어 자신의 향방이 변할 것입니다. 주로 손을 놓지 않는다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빛이 삼각의 프리즘을 통과하는데 제일 먼저 닿는다고 보이는 보라색의 경우가 먼저 저항 매질을 통과하면서 방향을 틉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프리즘 재질에 닿는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프리즘을 역삼각의 반대로 위치하여 빛을 쪼이면 어떻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빨강색이 아래 보라색이 맨 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파장에 의하고, 이는 여러 색상의 혼합한 빛이 매질의 저항을 통과하면서 저항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빛의 파장이 저항 길이, 값이 높은 쪽, 프리즘 직경이 긴 부분에 통과하여 자리잡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장이 짧다는 보라색 계열이 투과율, 저항에의 투과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왜 그런가,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빛을 파장, 파동, 입자 등으로 여겨 이동하고 있을 때, 한 점의 작은 정도의 질량의 빛의 이동의 내부에는 여러 색, 파장이 혼합하여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후, 좌, 우, 상, 하의 위치에 어느 파장, 색이 와야 하는 규칙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빛 한 점의 이동이 특정 매질을 함유하는 매개의 표면 기울기 등과도 그다지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시적으로 확대해 들어가면, 그 기울기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정도의 단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점의 빛과 단지 저항 매개의 표면에 맞닿고 있는 그 순간에 빛의 나뉨은 시작됩니다. 그 매질의 공간을 통과하면서 말이죠. 거기에는 2가 1보다크다는 개념과 같은 질서나 그 빛 내부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물론 1이 2보다 크다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념, 관점이 변화되면 말이죠. 그러나, 일반적으로 살펴, 한 점의 빛이 어떤 매질을 통과하면, 일련의 법칙이 적용되면서, 그 빛의 내부에 법칙 적용, 질서 등으로 인해 빨강이 지구 대기권 쪽으로, 보라가 지구 중심부 쪽으로 자리를 잡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장이 이를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과 여기에 더하여, 고유의 파장이 다르기에, 이 또한 저항의 매질과 연관되는 동시에 지구의 중심과 대기라는 방향성과도 연관이 있어 그런 빛의 나뉨이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기에는 자기장과 전기장 등에 의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고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 자체가 이동하는 가운데는 여러 색상 각각의 빛의 위치가 어딘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여러 색상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특정한 저항의 매질의 공간을 통과하게 되면, 그 때 빛의 파장과 입자의 고유 능력, 영역에 의해 순차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다르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전 회서 살펴본 빛의 얘기로 돌아가, 바다의 빛이 파랗고, 이의 반사로 하늘의 빛이 대체로 파랑 계열이 되는 데는, 공간을 구성하는 매질을 통과하는데, 파랑 정도의 파장과 입자가 적합하기에 그러한 모습을 띈 다고 하겠습니다. 바닷물, 강물 등 물이라는 매질의 주요 구성분의 저항 정도가 파랑계열의 빛이 투과하기에 적절한 저항 값을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물 계열이 대체로 녹색을 띄는 데는, 빛과의 광합성에 녹색 정도의 파장, 입자가 투과할 때의 저항이 최적이기에 그런 색을 띄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에 적합한 구조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광합성이 전기 발생과 연계하는 현상을 연구하여 등장한 태양빛, 열 발전 시스템이 주로 파랑계열로 보이는 기판을 사용하게 된 데는 어떠한 연유가 있는 것 일까요. 녹색 계열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까요. 잘은 모르겠으나, 원재료가 그러하기에 그럴 수 있으며, 태양 발전은 파랑계열이 효과적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얘기의 흐름이 좀 분산이 되었습니다.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의 모습이 그러하듯, 얘기의 내용이 그러하듯, 삶의 모습이 그러하듯, 특정 색상의 레이저를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빛이 분산하는 모습은 한때는 놀라울 수 있지만, 시대가 흘러서는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글을 소개하고 있는 즈음, 주변서 매우 크고, 또렷한 무지개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 그런 경관을 본적은 이전에는 없었고, 제 삶 가운데도 그런 놀랍고 또렷한 커다란 무지개 관람은 없었습니다. 이 모습 자체도 매우 원거리서 발생한 것임에도, 그렇게 크게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광대한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의 이면에 계신,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간의 작품 활동이라고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Sep 2016

uploaded on J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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